렌스터 낙성-렌스터 낙성


그곳은 벌써 난리통이 되었다. 코노트 쪽 성문으로, 용에 등 위에 매달린 트라키아 병사가 한 사람, 또 한사람씩 침입해 온다. 성문을 닫지도 못한 채, 노병이 쓰러져 간다.

"너무 빠른데."

핀은 하늘에 펼쳐진 용기사 무리를 분한 듯 바라보았다.

"서두르세요, 핀.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라케시스에게 이끌려, 핀도 성 안을 달려 빠져나간다.

"라케시스 님, 리프 님은 제가..."

"전 괜찮아요. 핀이 잘 싸워줄 수 있어야만, 이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을 거에요."

"네."

"제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요. 핀도 서두르세요."

"이것을, 라케시스 님.. 리프 님의 짐입니다. 에슬린 님이 놓고 가셨던 지팡이도 들어있으니, 사용해 주세요."

"고마워요. 당신도 빨리 도망치세요."

"무운을, 라케시스 님, 핀 님."

"감사합니다. 당신에게도 노바의 가호가 있기를..."

핀은 시녀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짐을 챙기러 달려갔다.

간단하게 꾸린 짐과 함께 손에 든 것은, 주군 큐안에게 받은 창이였다. 용자의 창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몇 번이고 핀과 함께 궁지를 빠져나왔었다. 말에 붙어 있는 철의 창과 함께, 항상 전장에 있었던 창이었다.

"큐안 님, 리프 님에게 노바의 가호를.... 부디 지켜주시길..."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다.

심약한 표정을 하던 청년 기사의 얼굴이. 싸움을 각오한 얼굴로 바뀐다.

"핀, 이런 데서 뭘 하고 있어?"

"글레이드구나. 나는 라케시스 님과 같이 리프 님을 피신시켜야 해."

"이미 들었어. 빨리 서둘러, 트라키아의 본대가 거의 다가온 것 같아."

"벌써..."

"그 놈들이 온다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

평소에는 매사를 냉정하게 말하던 글레이드가, 흥분한 듯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넌 성에 남는 거야?"

"아니, 드리아스 장군의 휘하의 사람들은 모두, 리프 님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어. 일단 교란시키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그 이후엔 다시 합류하기로 했어."

"그러면, 그 때.."

핀은, 따라오려는 글레이드를 제지하고, 라케시스가 기다리는 안뜰로 향했다. 복도에서 엇갈린 시동에게 자신의 말을 준비해 놓으라고 말했다.

이미 말에 타 있는 라케시스가 달리는 핀을 보고 있다. 주변마저 가릴 것 같은 망토의 그림자 속에서 리프가 얼굴을 내민다. 아마도 핀을 걱정해서일 것이다.

"빨리, 핀!"

"늦어 버렸습니다, 리프 님, 라케시스 님."

"리프 님, 위험하니까 얼굴을 내밀면 안 돼요. 난나를 잘 보고 있으세요."

"핀은?"

"핀은 반드시 곁에 있을 겁니다. 리프 님, 라케시스 님 말대로, 꼭 붙잡아 주세요."

"응"

"조금 흔들릴 수도 있지만, 망토 속에 잘 숨어 있으세요, 리프 님. 누가 쳐다보더라도, 알 수 없도록..."

"응, 알았어."

핀을 확인하고 안심했는지, 리프는 라케시스의 망토에 숨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라케시스의 용맹한 모습을 보는 것은 핀에게는 오랜만이었고, 렌스터의 사람들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다. 저 연약해 보이는 공주님이, 마스터나이트의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고도 믿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레지아에서 받았던 말을 소중하게 타고 있는 라케시스는, 렌스터에서 너무 눈에 띄지 않는 망토를 입고 있었지만,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그 모습은 싸움의 여신을 연상시켰다.

"핀..."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라케시스 님, 늦지 않게 따라와 주세요."

"괜찮아요, 핀. 그때 이후로 많이 늘었으니까요."

가겠습니다, 라는 핀의 말과 동시에, 두 필의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마도사나 궁병이 적은 렌스터의 성은, 하늘에서 오는 공격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트라키아군의 선봉인 용기사는, 아군이 진입하기 쉽도록 성문을 지키는 병사를 우선적으로 제거했다. 그 좋은 솜씨가, 그들이 잘 훈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단, 성을 제압하는 것만 생각한다. 트라반트 님이 오시기 전까지 제압하고 싶다."

"대장, 도망가는 자는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내버려 둬라. 하지만, 왕족은 놓치지 마라. 뒤가 귀찮아진다.... 왕자가 있다고 했다. 죽이지 않고 잡아온 자에게는 포상을 주겠다."

용기사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인다. 성에 남은 왕족은 왕비와 왕자 리프 뿐.. 어린아이인 리프를 붙잡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리프 왕자는 기사들이 지키고 있을 거다. 그들은 만만치 않으니, 지지 말도록."

대장은, 기세를 과신하기 쉬운 병사들에게 주의를 준다. 비록 주력은 없다지만, 과거의 전투에서 무훈을 세운 노병들이 어떻게든 계책을 세우고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고, 젊은 기사들은 이름을 날릴 기회를 위해 자신의 능력 이상을 하려 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트라반트 님을 위하여!"
"트라반트 님을 위하여!"

그렇게 말하며 용기사들은 렌스터 성을 향해 강하하기 시작했다.

"주 목적은, 왕성의 제압. 왕족은 발견하는 대로 잡는다. 궁병과 마도사는 거의 없을 거다. 그래도, 이쪽의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해 유의하도록."

지휘하는 용기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린다. 강하한 기사들은 렌스터의 기사들을 향해 창을 내찌른다. 피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노병과 경험이 적은 병사들 뿐. 건물 밖에 있던 자들은, 차례차례 쓰러져 간다.

성에서 성 아래 거리로 나온 핀 일행의 앞에도 용기사가 내려온다. 핀이 교묘하게 피하는 그 옆을 라케시스가 달린다.

"핀, 조심하세요. 거리를 벗어나면, 그들은 뭐든 할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요."

"여차하면, 저를 버리고 달아나십시오.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안 돼요. 같이 가지 않으면.... 당신은 렌스터의 기사잖아요. 주군인 리프 님을 두고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라케시스 님..."

"저라도, 언제까지 리프 님의 곁에 있을 수 있을지는 몰라요. 당신만은 곁에 있어드려야..."

"네. 일단, 전력을 다합니다."

"그래요, 그래야 핀이죠. 역시 렌스터의 기사네요."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말... '핀이 리프 님을 지켜준다' 라고 거듭하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 간다. '죽지 말고, 리프 님만을 생각해라' 라며,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하얀 마스터 나이트의 갑주를 몸에 두른 여기사와, 파란 머리카락의 렌스터 기사...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실력은 꽤 확실했다. 다만, 여기사 쪽은 무언가를 보호하며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쫒던 용기사들에게는, 그들을 공격해야 공이 될 것이라는 걸 예측했을 것이다. 차례차례 덤벼들었다.

"핀, 이쪽으로."

"원군인가?"

거리의 골목에서 렌스터 기사들이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 용기사들은 좁은 골목길에는 들어가지 못하기에, 상공을 선회하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라케시스 님, 이 망토를 사용하십시오."

"당신..."

"두 분은 눈에 띕니다. 어두운 색의 망토를 뒤집어쓰면, 저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미끼가 되어, 나가겠습니다. 그 뒤에 도망가주세요."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네, 핀 님..."

"서둘러라 핀, 코노트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적어도 저 언덕까지는 도망쳐야 해."

"네, 무운을..."

기사들을 배웅하자, 그들을 용기사들이 뒤쫓아가는 것이 보였다.

"가요, 핀. 그들의 염원을 저버릴 순 없어요."

라케시스의 재촉을 받으며, 그들이 나간 것과는 다른 골목길로 거리를 빠져나갔다. 동쪽에서 모래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트라키아의 본대가 육박한 것이리라.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건... 괴로운.. 것이군요."

"그래요, 핀.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믿으면 길이 열릴 거에요."

"그런 걸까요...?"

"어라, 당연하고말고요. 길을 만들어 가는 건 살아있는 우리들이에요.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아무것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전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라버니는 나아가려 하시지 않았지만요.... 그러니까, 그런.."

"면목없습니다..."

"당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핀. 자,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마을사람들도 있는 것 같네요."

라케시스가 가리킨 쪽에, 나지막한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사람 그림자도 보인다. 언덕 아래에 있는 나무 그림자에 말을 숨긴 두 사람은, 라케시스가 난나를, 핀이 리프를 안고 언덕 위에 섰다. 렌스터 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타고 있어... 거리가.. 렌스터 성이..."

"우리 마을이 함락되어 버렸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도 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바야흐로 함락되는 렌스터 성의 광경이었다. 성의 뒤편에서 솟아오른 불이 성 전체를 뒤덮을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로 트라키아 용기사의 날개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불로 향해 뛰어드는 벌레 떼처럼 보였다.

뒤따르는 보병대도 도착했는지, 오른쪽에서는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옆에 있었어야 할 라케시스는, 탈진한 듯 무릎을 꿇고 있다. 팔에 안겨 있는 리프 왕자도, 핀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거리의 사람들 중에서는, 울음을 터트리는 자도 있다. 하지만, 리프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성을 응시하고 있다.

"핀..."

리프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핀은, 라케시스를 재촉하며 그 언덕을 떠났다.


그들이 겪을 고난의 길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렌스터 성 낙성과 함께 왕국은 멸망했다. 어린 왕자가 도망쳤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였다.
렌스터를 점령한 트라키아 왕국군은, 체제를 갖추자, 곧바로 얼스터 왕국으로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전군을 가지고, 단숨에 야망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란벨 왕국의 프리지 가문에 지원군을 요청했던 얼스터 왕국에, 바야흐로 대군이 공격하려 했던 그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원군이 트라키아 반도에 도착했다. 그것은, 공포도 같이 데려왔다. 로프트 교단의 승병부대가,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승승장구하던 트라키아군 이였으나, 프리지 가가 자랑하는 마도기사대와 승병부대의 공격 앞에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압도적인 불리함을 읽은 트라반트 왕은, 마지못해, 먼스터 지방에서 철수했다. 프리지 가는, 그대로 북 먼스터 지방에 주둔해, 실질적으로 그란벨 제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고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